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문단 편집) == 여담 == * 몽유병자 세자르 역을 맡은 배우 콘라트 파이트(Conrad Veidt)는 이 영화에서는 지나친 분장과 동작 때문에 기괴한 인상이지만, 병원에 환자로 실려왔을 때 잠든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실제로는 매우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미남 배우였다. 파이트는 1933년에 유대인 여성과 결혼한 직후 영국으로 이주했는데, 당시 독일 영화계의 스타로 매우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유대인 여성과 헤어지기만 하면 계속 활동할 수 있었으나 나치와 [[반유대주의]]에 항거하며 독일을 떠난 것. 이후 할리우드로 건너가 여러 작품에서 나치 악역을 도맡았고, 그 중 하나가 불멸의 명작 [[카사블랑카(영화)|카사블랑카]]의 슈트라서 소령이었다. 그러나 파이트는 카사블랑카 개봉 직후인 1943년 3월 [[로스앤젤레스]]에서 [[골프]]를 치던 도중 [[심근경색]]으로 향년 50세의 이른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 알란 역의 한스 하인리히 폰 트바도프스키(Hans Heinrich Twardowski)는 [[동성애자]]였기에 1933년에 나치가 집권하자 독일을 떠났다. 이후 할리우드에서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는데, 독일군 역할이나 반나치 성향의 영화도 여럿이다. 카사블랑카에도 독일군 단역으로 출연했다. * 프란시스 역의 프리드리히 페어(Friedrich Feher)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1933년에 영국으로, 이후 미국으로 이민했다. * 감독 [[로베르트 비네]]는 개신교도였지만 유대인의 후손. [[1933년]] 5월 신작 ‘태풍 (Taifun)’이 상영금지된다. 결국 영국을 거쳐 프랑스로 망명했으며 다시는 독일에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 이후 커리어가 잘 안 풀렸던 편이어서,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프리츠 랑]]이나 G.W.팝스트와는 달리 감독 자신은 이 작품 하나로만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 * 제인 역의 릴 다고버(Lil Dagover)는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배우 중 하나였다. 무성 영화 시대였던 1920년대에는 독일뿐 아니라 스웨덴, 프랑스에서도 영화에 출연했다. 1933년 이후 정치적인 연루를 피해 주로 화려한 뮤지컬이나 코미디에 출연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 위문공연으로 상과 훈장을 받았다. 확실하게 비정치적인 필모그래피에도 불구하고 [[아돌프 히틀러]]가 총애한 여배우로 몇 차례 만찬에 참여했다고 한다. 전후에도 꾸준히 연기를 계속했다. 재미있게도 전후엔 반나치 영화에 출연하면서 그토록 자신을 총애하던 히틀러를 부정해버렸다. * 칼리가리 박사와 병원장 역할의 베르너 크라우스(Werner Krauss)는 이 영화로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연기력으로 극찬을 받은 대배우. 그러나 나치 시대 그의 행보는 별 볼 일 없지만 상술한 대로 1950년대 서독 연극계 부흥에 큰 공로를 쌓아 연극계 표창을 받으며 존경받던 연극배우로 천수를 누렸다. * 맥락은 다르지만, [[김기영(1919)|김기영]] 감독의 [[1971년]] 작 '[[충녀]]'도 처음과 끝이 이 영화와 같은 장소이며, 중간 부분은 환자의 이야기인 액자 구조이다. 김기영은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도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 영화 [[미친 능력]]에서 [[니콜라스 케이지]]와 하비가 좋아하는 영화로 언급된다. 둘은 서로의 영화 취향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이렇게 독특한 영화를 좋아하는 취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둘의 유대가 깊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